올해 처음으로 멀리 여행가고 싶다는 열정이 사그라 들었다.
그 과정이 일년에 걸쳐 천천히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한 달에 두 번씩 캠핑 다니고, 매해 해외여행 다니고,
늘 해외 한달살기 노래를 불렀는데
지금은 그냥 집이 좋고 편안하다.
내가 어디에 있건 마음이 천국인 곳이면 된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는데
요즘 내게 그런 곳은 집이다.
큰 고민거리 없이 잘자고 일어나
토요일 아침에 맛있는 커피 한 두잔 내려 마시며
거실 쇼파에 급한 일 하나 없이 느긋하게 않아 있자면
그게 행복이다.
이런 변화에는 몇 가지 계기가 있었는데
결론적으로 은퇴가 간절해졌기 때문이다.
아플 때 마음껏 쉬고, 편하게 병원 예약잡고 싶고,
식사준비, 청소, 빨래 등 여유 있게 일상을 꾸려가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회사에서의 사회생활, 눈치보기, 아닌 척 연기하기 이런 거 그만하고 싶었다.
월급의 대가로 인내하며 크게 의미 없는 일에 인생의 많은 부분을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은퇴하면 편안한 일상만으로 충만할거란 생각이 들었고
지금 돈, 시간 가성비 따지며 간신히 시간 내서 성수기에 강행군으로 여행 다녀오는 게
그리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차라리 돈 모으고 하루라도 빨리 은퇴하자.
지금 40대 중반이 된 지금,
여행도 시들, 옷 사입는 것도 시들해져 예전과 같은 열정과 감성이 사라져 가는데
앞으로의 나는 지금의 나와 또 다르겠지,
그러니 지금 더 많이 느낄 수 있을 때 여행도 가고 놀아보자는 마음도 있지만
돈과 시간이 트레이드 관계이기에
돈 벌고 쓰며 직장 다니는 기간이 길어지는 것이 더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리고 삶에 대한 관점이 조금 달라졌다.
화려하고 늘 꿈꾸고 도전하는 삶을 동경하던 과거와 달리
물 흐르듯 조용히 흘러가는 삶이 좋다.
여유 있지만 그 안에 나름의 질서가 있고
삶이 주는 예상치 못한 이벤트들을 즐길 수 있는 여백을 남겨둔.
작년 봄 발리에 다녀왔다.
가는 길에 싱가포르 경유해서 야간산책 즐기고
발리에 가서는 거대 가오리와 스노쿨링도 하고.
오는 길에는 베트남 하노이에 들려 쌀국수, 반미 먹고 맛사지도 받고
성당 야경이 보이는 콩카페에도 들렸다.
좋고 또 좋았다.
그런데 내일 집에서 늦잠 자고 맞이할 토요일 아침도 그 만큼 좋을 것이다.
익숙하고 따뜻하고 포근한 침대에서
대발이와 장난치다 거실로 나와서 잠시 멍 하다
커피 마시며 즐기는 아침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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