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불편하고 어색했다.
정보전달, 합의 뭐 이런 필요한 대화가 아닌
좀 친밀함을 요하는 그런 대화를 이어 갈 때면
한 시간만 있어도 기가 다 빨릴 만큼 불편했다.
돌이켜보면 초등학교 때까지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었는데
그 시간 의미 있는 관계를 만들만한 경험이 없었던 것 같다.
따뜻함 정 의지 친밀함 뭐 그런 류의 감정을 남길만한 추억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중학교 들어가고 부터는 학교, 학원, 독서실 등등 공부하느라 많이 바빠서
가정에서 따뜻한 경험을 나눴던 기억이 또 없다.
중학교 때도 독서실 갖다가 오밤중에 집에 오기 일쑤였어.
물론 엄마 손이 필요한 나이였는데
그런 세심한 돌봄은 없었던 것 같다.
한겨울 교복 위에 얇은 모직코드 입고 산업도로 육교 건너 학교에 다녔던 기억이 나.
너무 너무 추웠거든.
워낙 독립적인 성격이었고
외골수라 공부에만 꽂혀있던 시간이 길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뭘 기대하고 요구해야 하는지도 몰랐어.
그렇게 대학에 가고,
괴외 알바하고 서울로 학교, 학원에 다니며 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취업했다.
그 사이 내게는 정서적인 엄마의 존재는 늘 부재였던 것 같다.
물질적인 지원이 있었고 의식주를 제공받고 했지만
대학입학 후 늘 빠듯했다.
학자금, 생활비 다 대출 받았는데, 연체되는 날에는 꼭 내게 전화가 왔다.
그것도 여러 차례.
결국 졸업하고 내가 다 갚았다.
취업하고도 내 앞으로 대출받고 그랬는데,
다행히 그건 엄마가 다 갚았다.
그래도 회사로 재직확인 전화 오고 해서 난감한 적인 있었어.
직장생활하며 동생 생활비도 보조해야 했다.
멀리서 자취하느라 매달 들어가는 돈이 있었는데
동생도 주말 알바하며 열심히 살았고
나도 일부 보태고 그랬다.
지금 돌이켜보면 동생도 힘든 시간이었는데
나도 내 돈이 아까워 빡빡하게 줬던 기억이 미안함으로 남는다.
그런 시간이 흘러 내가 결혼을 하고
마흔 중반이 되고 보니
엄마와 남은 정이 없다.
가족이지만 타인같이 서로를 잘 모르고
가족으로서 책임과 도리만 남은 이상한 관계가 되어있다.
안정되지 못했던 유년시절, 학창시절을 겪으며
난 불안이 많고 그래서 늘 계획하고 준비하는 성향이 강해진 반면
엄마를 늘 자신만의 마이웨이를 추구한다.
성향, 성격, 그리고 종교가 맞이 않고
그걸 이해할 만큼 대화하거나 노력하는 등 시간은 나눠 본 적이 없다.
전에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만약 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다면
죽을 즈음해서야 이 소식을 엄마에게 알려야겠다’고.
지금 생각을 정리해보니
인생이라는 바다를 항해하던 중 어쩌다 우연히 한배에 탄,
그래서 서로에게 어쩔 수 없는 관계이지 않을까.
문제는
사랑하지 않는데
두터운 정이 있지 않는데
학습화 된 자식으로서 역할, 도리 같은 게 있다는 것이다.
머리로 알지만 가슴으로 와 닿지 않는.
엄마가 또 입원했다고 연락해 왔다.
올초 당으로 두 번 쓰러져서 119불러 응급실 가고 8개월만인가.
복강경으로 간 아래 무슨 스텐트 시술했다고.
안쓰러움, 걱정 이런 감정은 남아있지 않고
인간의 노화와 질병에 대한 담담한 수용,
그리고 피곤함과 스트레스.
얼마나 내 감정에 솔직하게 대하고 대처해야 할까.
자식의 도리는 어느 선까지 인가.
매번 이 둘 사이를 오간다.
타인으로서의 엄마,
그리고 부모 자식 간의 애틋한 정이 없는 관계
이런 내 감정 인식에서 오는 죄책감,
그리고 내게 남겨진 의무.
나에게 맞는 균형을 찾기란 어렵다.
내 숙제로 오래 남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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